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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회사 다니다 요리사 된 오시환(58)씨

정리=김신영 기자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1-01-26 09:28

책상물림의 '요리사 몸만들기' 성공기
마흔다섯에 사표 내자가족과 동료들이 만류했다
'시간이 더 지나면새 일을 못 할 것 같다' 오히려 그들을 설득했다
미국에서 3년간 주방 일 그리고 네 번째 식당
식탁 4개짜리가 지금은 20개가 됐다

"아이앰 루킹 포러 잡. 아이앰 쿡(일자리를 찾고 있습니다. 저는 요리사예요)."

2001년 미국 플로리다주(州) 마이애미의 식당들을 돌아다니며 내가 수도 없이 했던 말이다. "사장님과 얘기해보고 연락 드릴게요" "얼마 전에 직원을 새로 뽑아서 자리가 없습니다"…. 나이 마흔여덟. 20년을 '광고장이'로 살아온, 영어도 잘하지 못하는 한국의 아저씨에게 '새 문'은 잘 열리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한 1980년부터 이어온 광고 일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마흔에 접어든 즈음이었다. 젊은 시절엔 광고 업계처럼 신나는 직종은 없다고 생각했다. 경쟁사를 누르고, 광고를 따낼 때면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이기고, 이기고, 이기고…. 한 달의 반 이상 밤을 새워도 '이기는 즐거움' 때문에 힘이 났다.

광고회사 카피라이터로 일하던 1982년 28살 때의 모습. 한 달에 반 이상 밤을 새우던 시절이었다.

1990년대 중반, 마흔이 됐다. 날고 기던 선배들이 하나 둘 회사를 떠났다. 아니, 쫓겨났다. 나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았고 무서웠다. 어느새 일은 내 인생의 전부가 된 상태였다. 고민을 거듭하다 마흔다섯 되던 해에 사표를 냈다. 6개월 동안 가족과 회사 동료들의 만류에 시달린 뒤였다.

나는 "시간이 더 지나면, 새 일을 시작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오히려 그들을 설득했다. 내가 약간의 자신을 가졌던 것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봉사 동아리 회원들과 일요일마다 봉사활동을 다니면서 내가 음식을 만드는 일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느꼈다. 복지관의 어린이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주는데 그 일이 즐거웠다. 가만히 보니 봉사도 봉사지만 어느새 음식 만드는 게 좋아졌던 것이다. 새 일을 한다면 요리를 해야겠다는 게 나의 작은 소망이었다.

퇴직금을 털어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 열댓평짜리 아주 작은 우동집을 냈다. 주방 아주머니 실력만 믿고 무작정 연 가게였다. 식당을 낸 지 2개월 만에 'IMF 외환위기'란 놈이 터졌다. 고시촌이 텅 비었다. '요리사 인생'의 첫 교훈을 얻었다. '기초가 없는 상태에서 일을 벌이는 게 아니다.' 6개월 만에 가게를 접었다.

주변 사람들을 수소문해 요리를 배우고 허드렛일이라도 할 만한 식당이 없는지 알아보고 다녔다. 바닥부터 닦아보자는 심사였다. 그러나 마땅히 갈 곳이 없었고, 친구의 소개로 연이 닿은 곳이 미국이었다. 플로리다 마이애미에 있는 일식집으로 최저임금(주급 280달러)에 숙식을 제공하는 조건이라 했다. 외국에서 요리와 서비스 기법을 배우는 것도 의미 있다고 여겨졌다. 플로리다에 가서 식당 바닥 청소부터 배웠다. 멕시코·엘살바도르·인도네시아의 20대 직원들과 함께 기숙사에 묵었다.

칼질을 배우면서부터는 손에 상처가 가실 날이 없었다. 팔뚝엔 튀김 만들다 덴 화상 자국이 물방울처럼 점점이 박혔다. 1년쯤 지났을 때쯤, 사장이 이제 그만두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내 비자 만기가 다가와 불법 체류자를 취업시켜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식당에서 결국 쫓겨난 나는 플로리다에 있는 한국 절에 들어가 기식하면서, 동네 식당 문을 두드리고 다녔다.

그러다 뉴욕에 있는 한식당에 자리를 얻었다. 요리도 요리였지만 '요리사의 몸'을 만드는 게 더 중요했다. 20년 동안 책상 앞에 앉아, 의자만 돌리며 일하던 나에겐 종일 서서 일하는 요리사의 체형으로 탈바꿈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 야간 주방 보조로 2년을 보내면서 발바닥에 굳은살이 생기고 다리와 팔에 근육이 붙었다. 손바닥이 생선 가시에 찔린 상처로 누더기가 되고, 새우 까기와 홍당무 썰기로 밤을 지새운 600여일이 지나간 후였다. 도마를 보지 않고, 상대방과 대화를 하면서도 칼질을 능숙하게 해낼 수 있는 수준에 다다랐다.

2003년 가을, 한국으로 돌아갈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3년 만에 이삿짐을 챙겼다. 비행기 표를 예약하니 수중에 남은 돈은 한 푼도 없었다.

오시환씨가 2003년 식탁 4개짜리로 시작한 바다요리 전문점은 7년 만에 식탁 20개짜리로 성장했다. /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한국에 돌아와 서울 계동에 첫 식당을 냈다. 내가 얻을 수 있는 대출은 친구 보증을 통한 단돈 1000만원. 3년 동안 은행거래가 없었던 탓이었다. 사무실로 쓰던 약 33㎡(약 10평)짜리 2층 방을 얻어 식탁 네 개를 놓고 '바다요리 전문점'을 열었다. 좋은 재료를 쓰고, 즐거운 마음으로 식당을 꾸려갔다. 정성을 알아주는 손님들 덕분에 소문이 나서 개업한 지 1년 만인 2004년 식탁 10개짜리로, 2009년엔 지금의 20개짜리로 식당을 넓혔다.

요즘 나의 신조는 '목표로 나를 다그치지 않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은 갖되, 마감은 정해두지 말자는 것이다. '직장생활하며 나를 옭아맸던 전략·계획·시한 같은 단어로부터 자유로워지자.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충실하게 하고, 그 시간을 즐겁게 보내자.' 58년의 삶, 두 번째 직업, 네 번째 식당…. 나는 지금 내 삶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를 지나는 중이다. 그리고 미국에서 죽을 둥 살 둥 일하며 밑에서부터 기초를 닦았던 주방 수련 3년이 없었다면, '제2의 오시환'도 없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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